노동절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중공업 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연한 것처럼 출근했다. 애초에 쉴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단계 하청으로 인한 외주화의 끝자락에 있는 그들의 삶은 그렇게 법적으로 보장된 유급휴일 조차 챙기기 어려울 만큼 고달팠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날 그들 위로 떨어진 크레인은 그들의 삶을 통째로 앗아갔다. 세상을 떠난 자들은 물론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회복 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지난 4주기를 추모하며, 사고로 인한 회복 할 수 없는 상실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만 그 희생과 고통을 대가로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며,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음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1년의 세월이 또 흘렀다. 이 1년 동안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법원은 2021년 9월 30일 이 사건 발생에 책임이 있는 자들에 대한 형사 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로 돌려보냈다. 이는 원심 판결이, 삼성중공업 등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이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가 발생 한 것은 바로 삼성중공업이 피해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 하지 아니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2019년 이 사고에 대한 최초 법원 판결이, 사고 발생은 오로지 현장 노동자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며 삼성중공업은 의무를 위반 사항이 없고, 오히려 모범적으로 안전 의무를 지키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린 때로부터 약 2년여가 지나서 비로소 나온 정상적인 판결이었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것 또한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과 시행은 산업안전 실현을 위한 주춧돌이자 디딤돌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비록 그 적용 범위 등에 있어 산적한 문제가 있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의 시행으로 산업안전이 하루 아침에 실현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산업재해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공분의 결정체인 이 법은 그 존재만으로도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2022년 2월 24일,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지도위원은, 부당하게 해고된 지 37년 만에 마침내 명예 복직하고, 동시에 퇴직하였다. 2011년 309일 간의 살인적인 크레인 투쟁을 한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날 “탄압과 분열은 자신이 안고 가니, 동지들은 부디 미래로 나가 달라”고 당부하였다.
이렇게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몇 가지 희망의 씨앗에도 불구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절절한 당부와 바람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당선인과 차기 정부의 노동 정책은 ‘부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없느니만 못한 공약들로 점철되어 있으며, 지극히 반노동적이고 지나치게 친기업적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이미 중대재해처벌법과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최저임금제도 등에 대해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하며 반 헌법적이기까지 한 시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자노동자 지원단의 활동과 역할은 물론, 크레인 사고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은 5년 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앞으로도 조금 씩 희미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5번 째 또 다시 맞이하는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의 기억 앞에서, 또 다시 찾아올 노동절을 진정한 노동자의 날로 기리기 위해 우리는 보다 치열한 투쟁과 연대를 다짐 할 수밖에 없다.
2022년 4월 28일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기업과인권 네트워크
마틴 링게 프로젝트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지원단
마산·창원·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남지부
전국금속노동조합법률원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