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대만의 시민단체들이 유엔 ‘기업과 인권 포럼’에서 한자리에 모여 각국에서의 공급망 실사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유엔 포럼이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유엔 전문가를 초청한 간담회를 개최하여 삼성, 미쓰비시, 포모사 플라스틱 등 주요 대기업들의 문제점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동아시아 시민사회, 공급망 실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 발표

11월 25일 제네바의 상징적인 ‘부러진 의자(Broken Chair)’’ 기념물 앞에서 기업과인권네트워크(한국), 환경권재단(Environmental Rights Foundation, 대만), 대만다국적기업감시단(TTNC Watch, 대만), 휴먼라이츠나우(Human Rights Now, 일본)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단체들은 동아시아 대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공급망 실사법의 부재로 기업에 의한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가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공급망 실사법 제정을 통한 효과적 규제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이번 성명에는 국제인권연맹(FIDH), OECD Watch, 아시아인권발전포럼(FORUM-ASIA)을 포함한 전 세계 30개 이상의 NGO가 동참했다. (공동 성명 전문(국문) 링크 공동 성명 전문(영문) 링크)


공급망 실사법, 삼성·미쓰비시 등 동아시아 대기업의 책임을 묻다

이 단체들은 이어서 11월 26일 유엔 전문가를 초청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동아시아 대기업들의 구체적 인권침해 또는 환경파괴 사례 발표를 진행했다. 삼성이 베트남에서 유해물질을 배출한 사례, 미쓰비시 상사 등이 연루된 일본 참치 공급망에서의 인권침해 사례, 대만 기업 니켈 공급망의 인권 문제,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이 베트남에서 환경 및 인권을 침해한 사례 등이 다루어졌다.

신유정 변호사(기업과인권네트워크, 한국)는 한국, 일본, 대만의 대기업들은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글로벌 공급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를 규제할 법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삼성전자 베트남 박닌 공장에서의 오폐수 배출과 대기오염이 지역주민들의 인권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제시했다.

신수안선 캠페이너(환경권재단, 대만)은 “대만 기업들이 의류, 전자제품, 반도체 등 여러 산업에서 글로벌 공급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법적 수단이 전무합니다. 심지어 장기간에 걸쳐 인권 침해를 저지른 기업들도 아무런 제재 없이 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라며 포모사 플라스틱을 예로 들었다.

류타로 오가와 변호사(휴먼라이츠나우, 일본)는 유럽의 기업 지속 가능성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CSDDD) 경험을 참고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해관계자의 실질적인 참여가 국내법에서도 반드시 의무화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사례 발표 후에는 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UN Working Group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위원인 피차몬 여판통(Pichamon Yeophantong) 박사가 참여한 정책 토론이 이어졌다. 여판통 박사는 동아시아의 법적 프레임워크가 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GP)과 같은 국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여판통 박사는 “무엇보다도 기업들의 변화가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하며, “물 속에 뛰어드는 ‘첫번째 펭귄’이 필요합니다”라고 비유했다.

유럽기업정의연합(ECCJ)의 넬레 마이어 국장은 유럽의 CSDDD 입법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무엇보다도 법률의 집행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효과적인 입법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마이어 국장은 “효과적인 법률은 민사 손해배상책임과 같은 수단을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또한 보고서 "노동, 환경, 그리고 아시아 초국적 기업 – 동아시아 기업과 인권 운동을 향하여"의 발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일본, 한국, 대만의 기업과 인권 정책에 대한 분석과 함께, 기업의 책임성 확보를 위한 강력한 규제의 시급성을 보여주는 사례 연구를 담고 있다. (보고서(영문) 다운로드)

동아시아 대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있는 공급망 실사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들 기업의 공급망에서의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실효성 있는 규제로서 공급망 실사법의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더 강력한 글로벌 협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