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재정경제부장관과 한국수출입은행장에게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세이프가드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주요 권고 내용은 ▵ 환경사회위험평가와 현지 시민 참여 보장에 관한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출입은행’)의 책임 확대, ▵ 사업 관련 불만 및 문제 제기 창구인 책무성 메커니즘의 접근성과 독립성 강화, ▵ 환경사회자문회의 제도의 활성화 등이다.
세이프가드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예방·최소화하고, 국제사회가 쌓아온 인권 기준을 충족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한국의 유상 공적개발원조(ODA) 전담시행기관으로 EDCF를 운용하는 수출입은행 역시 2016년부터 세이프가드 정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국내외 시민사회는 현행 세이프가드가 현지 시민의 인권과 참여를 보장하고 그 지역의 환경을 보호하는 데 충분하지 않음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EDCF 자금이 투입된 <필리핀 할라우강 다목적 사업 2단계>의 투만독 선주민 인권침해,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 사업>으로 인한 강제이주 및 2018년 댐 붕괴 사고가 대표적이다. 특히, 투만독 선주민 당사자와 현지 활동가는 2018년과 2025년, 두 차례나 한국을 찾아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국은 관련 정보를 더 제공하지도, 후속 조치 결과를 공유하지도 않았다. 사고가 일어나거나 문제 제기가 있을 때마다 수출입은행은 협력국 정부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관련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이번 권고에서 인권위는 EDCF 세이프가드의 불투명성에 주목했다. 현행 제도는 개발 사업의 영향을 받는 지역사회에 관련 정보를 제공할 책임을 차주(협력국 정부)로 명시하고, 사업 선정과 환경사회 정보 역시 차주의 서면 동의가 있을 때만 ‘기밀 정보’를 제외하고 공개하도록 규정한다. 인권위는 이로 인해 오히려 고위험 사업의 정보가 덜 공개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나아가 세계은행과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처럼 수출입은행 자체의 정보공개 책임을 확대하고, 특히 사회·환경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사업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할 책임을 협력국 정부에만 전가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현행 세이프가드는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사업의 환경 및 사회 영향을 성공적으로 관리하는데 필수 요소”임을 인식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해당사자와 소통하고 참여를 촉진할 책임은 차주에게 미루고 있다. 또한 사업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책무성 메커니즘이 제도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지금까지의 신고 건수는 단 1건에 불과하다. 제도의 홍보와 접근성이 낮고 신고 접수 이후의 절차 규정도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수출입은행이 이해당사자 참여와 접근성 보장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관련 절차를 실효성 있게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마지막으로, 인권위는 환경사회영향심사와 책무성 메커니즘의 공정성과 신뢰성 강화를 위해 기관으로부터 독립된 기구와 운영체계를 갖출 것을 권고했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사례처럼 독립된 패널로 구성된 책무성 매커니즘을 마련하고, 이미 외부인사로 구성하여 운영 중인 ‘환경사회자문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그 논의 내용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ODA가 그간 양적으로 성장하고 사업 성과를 측정하고 공유하는 측면에서 일부 질적인 성숙을 이루었음에도, 현지 시민의 권리와 환경을 보호할 세이프가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근본 원인은 ODA를 외교와 ‘국격’ 과시의 도구로 삼는 성장·성과중심 문화에 있다. 이로 인해 현지 공동체의 우려와 요구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고, 피해와 실패는 숨겨졌다. 최근 발표된 한국 ODA 최상위 정책 문서인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6-2030)>에서도 ‘국익’ 추구와 사업 대형화, 한국 기업의 참여 확대가 강조되었다. 이러한 기조가 지속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피해 규모가 더 커지고, 현지 공동체의 배제는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
우리는 이제라도 인권위에서 제도 개선 권고가 나온 것을 환영한다. 유상 ODA의 전담시행기관인 수출입은행은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하고, 무상 ODA 전담시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 또한 이를 교훈 삼아 세이프가드 개정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 세이프가드는 사업 현장의 가장 취약한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결정에 참여하며, 이들의 요구와 질문에 책임 있게 응답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 이번 권고를 계기로 현지 시민의 권리와 환경의 다양성이 가장 우선시되는 국제개발협력 문화가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